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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 위기의 주부들
    리뷰/기타 2018. 11. 20. 00:02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시즌 8을 정주행 했다. 그 전에도 매일 2화 이상 감상하고 자느라 거의 폐인 수준의 삶이었음... 그만큼 몰입되고 재미도 있고, 느끼는 것도 많았던 드라마였다.

    방영 당시에는 막장 드라마라고 유명했던 모양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상황들이 익숙하다는 점이 무서움.

    교외의 작은 마을 위스테리아 레인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와 그 안에 얽힌 주부들의 이야기. 시즌이 길어지며 새로운 이웃이 오기도 하고, 있던 사람이 떠나가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라고, 누군가는 살해당하는(...)등 작은 마을 안에서 참 복작복작하게 사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주인공들이 무한 가족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있을 때, 내로남불 격으로 행동할 때마다 보기 힘들때도 있었지만 어찌보면 그런 궁상스러움이 평범한 사람의 사는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많은 주부들이 등장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캐릭터는 ‘​브리’. 모든걸 통제하려고 하는건 르넷이랑 비슷하지만 가정의 울타리가 없어 위태로운 여자였다.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생활. 우아함. 아름다운 정원. 훌륭한 요리솜씨 등. 겉으로 보기에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동경의 대상을 그려놓은 듯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를 죽도록 미워하며 엇나가고, 연인은 죽거나, 병적으로 집착하거나, 떠나가거나, 바람둥이면서 죽는다....흑흑. 그녀 특유의 고상함도 알콜 중독으로 캐릭터 자체가 바닥에 내쳐지다 못해 짓밟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친듯이 대립하던 앤드류와 화해했을 때, 다니엘을 평가하고 비난하지 않을 때, 호텔에서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에서 재기했을 때 엄청 감동적이었다. ​시즌 통틀어 돈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 재력도 인상적 시즌 8정도 되니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머핀 바구니가 왠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캐릭터는 ‘​가브리엘’. 일단 본인 캐릭터가 주장하듯 예뻐서 사랑받는 것이 당연하고 전부인 여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도 그녀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못되게 굴지만 강하게 보이는 이면엔 늘 약한 마음이 보인다. 늘 사랑을 갈구하고 카를로스랑 투닥거리는 모습이 깨알 재미. 뜬금없이 아이가 바뀌거나, 남편이 시력을 잃었다가 찾는다거나, 계부가 나쁜짓을 저질렀다거나, 외롭다고 미성년자 정원사를 꼬시고, 이혼한 전 남편과 불륜을 저지르는 등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이자 가장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스러운 삶인듯.

    능력있는데 전업 주부여야하는 고통과 독박 육아의 지옥을 제대로 보여주었던 ‘​르넷’. 아무리 위태로워도 굳건할 것 같았던 톰과의 관계를 갈아엎은 7, 8 시즌에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마지막에 톰이 르넷을 ‘the love of my life’라고 했을 때 얼마 전에 본 영화도 생각나고 요즘 많이 듣는 곡이라 눈시울이 찡했다. 하지만 시즌 중반까지 아이들에 관해서 어찌가 이기적이던지. 자기가 급할 때 말도 없이 친구네(주로 브리..) 애들을 던져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친구를 볶아대는 모습이나 모든 것이 자기 통제대로 여야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고통스러웠는데 암 투병이나, 남편의 혼외 자식 문제, 가족 사업으로 벌인 피자가게가 망해가는 와중에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슈퍼 맘의 고충을 뼈져리게 느낌...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오지랖과 내로남불의 끝판왕! ‘​수잔’. 솔직히 드라마를 보다보면 욕을 안할 수 없는 캐릭터이나 사건을 일으키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희생당한 감이 없지 않은 듯해서 짠하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폴 영을 가여워하며 다정하게 대해준 유일한 사람. 아마도 그녀의 속성은 아이같은 순수함과 호기심. 따뜻함이 아닌가 싶다. ​철부지 엄마이자, 언제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아내. 왜 각본가는 막바지에 마이크를 그렇게 안타깝게 죽게 만든걸까. 언제나 함께할 것 같던 친구들과의 마지막 포커 모임을 즐기고, 줄리의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위스테리아 레인을 떠나는 수잔의 모습을 보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일까 싶다.

    막장이라고 말해지지만 시즌 내내 다양한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드라마. 당분간은 이 여운을 즐기고 싶다. 드라마를 몰아보면서 난 참 자제력이 없구나 하고 스스로도 크게 느겼지만 그럼에도 또 앞으로는 어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더라도 쉬엄 쉬엄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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