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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 나쓰메 소세키
    리뷰/책 2018. 9. 3. 21:42

    ​나는 나의 과거를,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다른 사람한테 참고로 제공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내만은 단 한 사람의 예외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나는 아내한테 아무것도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갖는 기억을 가능한 한 순백의 상태로 보존해 주고 싶은 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니까, 내가 죽은 다음에도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당신한테만 고백된 나의 비밀로서 모든 것을 가슴속에 담아 놓아 주십시오.
    -363p


    마지막 문단을 읽는데 그야말로 소설 내용이 함축되어 표현된 느낌이었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왜 그리도 염세적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싱겁고 평범한 이유라서 약간 실망한 것 같기도.

    하숙집에 굳이 절친을 데려와서 재우고 먹이다 결국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안달을 내는 점이나, 당사자들에게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끙끙 앓다가 아가씨의 어머니에게 선수를 쳐 결혼을 승락받은 것. 그로인해 아무런 티도 내지 않다가 급작스럽게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친구에게 죄책감을 느껴 그렇게 열망하던 아내와 결혼하고도 그녀에게 마음을 다 열지 못하고 오만 상처를 줄대로 준 것. 세상과 유리된 채 살다가 결국은 친구처럼 자살해버린, 진짜 세상 이기적인 도련님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K에 대해 회상하는 걸 보면 지극히 선생의 개인적인 오해일 수도 있는데 혼자 망상에 빠져 너무 일을 크게 만든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혼자 상대방이 이러하겠지하고 지레짐작해서 괴로워 하는 모습은 한 없이 미숙한 아이를 보는 기분도 들고.

    아내의 과거를 순백으로 지켜주고 싶다는 어이없는 저 변명같은 말에 뒷 목을부여잡게 되는데 바보같은 놈이라는 욕이 안 나올 수 없었다. 타인의 과거와 기억을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고 재단해서 지켜주네마네. 웃기는 사람이야- 하면서 앞 부분을 다시 읽어보는데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에게 재산을 빼앗겨 세상과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나, 친구와 아내에 대해 가지는 죄책감에 평범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이 약간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선생이 ‘나’는 언제 찾아와도 귀찮아하지 않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던지(선생의 초반 자기 방어가 매우 오진데 주인공이 대차게 뚫고 들어간다. 흡사 연애 스토리임), 때로 본인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부모님이 위독하시면 재산 정리 문제를 확실히 하라며 조언을 해주는 등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결국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다는 점이 안타깝다.

    나는 죽기 전에 단 한사람이라도 좋으니 사람을 신뢰해 보고 죽고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되어줄 겁니까? 당신은 정말로 진지한 겁니까?
    -106p

    헐... 이렇게 보니 더 짠하네.
    원래라면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죽을 셈이었는데 주인공이 너무나 한결같은 믿음으로 진지하게 선생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 그의 이야기를 이끌어 냈으니, 그나마 주인공의 존재가 마른 가지 같은 선생의 인생에 자그마한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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