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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인 에어 - 샬럿 브론테
    리뷰/책 2018. 2. 5. 23:36

    지인이 제인 에어를 읽고 로체스터 나쁜놈이라고 욕했다. 옛날에 읽었던 것 같은데 분명 미친 여자가 나왔던 것 같은데, 그게 제인 에어 였던가...하고 가물가물하길래 다시 읽었다. 

    외숙모는 못된 사람이에요 -> 가정 교사와 주인양반의 밀당 대작전 -> 결혼합시다 -> 이 결혼에 반대합니다 -> 도덕적이지 않은 이 관계를 떠나겠어요 -> 우리는 사촌이오(by 명탐정 세인트존) -> 알고보니 사촌이 거액의 유산을 상속 -> 내사랑 나에겐 당신뿐   

    막장 드라마를 버무려 놓은듯한 이 전개로 인하여 몹시 재미있게 읽었다. 종교적 색채만 빼면 요즘 작품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음. 읽는 동안 제인 에어가 자신과 주변 상황을 퍽 감상적으로 묘사할 때, 감정에 대해 풀어놓은 구절들이 좋았다. 격렬한 상황조차 차분한 분위기로 조곤조곤 설명하는 것도 좋고. 


    고통스러운 마음과 원칙을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나 자신이 싫었다. 스스로 잘했다고 다독여 봐도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자존심으로부터도 전혀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내 주인에게 상처를 주고 그를 떠났다. 나 자신의 눈에도 내가 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을 돌릴 수도, 한 걸음이라도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하느님이 나를 앞으로 계속 이끌어 주었음에 틀림없다. 나 자신의 의지나 양심으로 말하자면 강렬한 슬픔이 의지를 짓밟아 버렸고 양심을 목 졸라 버렸다. 혼자 고독하게 걸어가면서 나는 미친 듯이 울었다. 정신 착란에 걸린 사람처럼 점점 더 빨리 걸었다. 마음속에서 시작된 허약함이 사지로 퍼져 나를 사로잡았고 이윽고 나는 쓰러졌다. 나는 얼굴을 젖은 잔디에 댄 채 몇 분 동안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여기서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니, 희망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곧 일어섰다. 길가에 다다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열성껏 양손과 무릎을 딛고 앞으로 기어가다가 단호하게 다시 두 발로 일어섰다.


    어렸을 때는 앙숙이었던 외숙모의 죽음을 앞두고 재회했을 때 그녀를 용서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도 퍽 인상적이었다. 진실하고 도덕적이며 신앙심 깊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비극적 사랑에 도취된 십대의 소녀의 모습과 남자들의 표정과 마음을 떠보며 즐거워하는 노련한 여인의 모습이 어우러진 묘한 매력의 주인공이었다. 결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녀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인생이라는 점에서 아주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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