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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빳사나 명상] 내면의 평화를 만나는 시간
    기록/이것저것 2018. 9. 5. 21:54

    준비물만 적어놓고 다녀온 후기는 적지 않았는데, 더이상 미루면 아예 잊어버릴 것 같아 부랴부랴 작성해봄


    ​​<1> 명상코스를 신청하다
    어느날 친구 R이 명상센터를 다녀왔노라고 이야기했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10일이나 휴가를 낼 엄두도 나지 않았고, 그 때는 한창 연애 중이라 마냥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눈 돌릴 틈이 없었다.

    반년쯤 지났을까? 나는 만나던 사람과 헤어져 쓰디쓴 고통을 삭히고 있었고, 마음은 혼란스러웠지만 일이 바빴기 때문에 감정을 덮어두고 모른척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오랜만에 R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이 친구의 얼굴에서 한없이 평화로운 아우라가 느껴졌다. R이 명상코스의 봉사자로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명상수련에 대해서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강하게 끌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감정을 돌아보며 정리할 시간,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을 시간이 필요했고, R처럼 평화로운 얼굴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에 여름 휴가를 이용해 명상 코스에 다녀오겠노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R은 무척 기뻐했다. 자기가 아무리 좋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해도 주변에서 명상코스를 다녀오겠다고 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 했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필요한 것들이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카카오톡은 3일 동안 접속하지 않으면 메시지를 수신하지 못하고 없어져 버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음.


    <2> 진안 가는 길
    아침에 출발하기 전까지도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난리였지만, 결국 어찌어찌 잘 해결됐다. 진안은 참 멀어서 가는 길에 휴게소에 자주 들러 간식과 커피를 먹으며 내려가야했다.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오래만에 고속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제법 좋았다. 날씨도 흐려서 너무 덥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풍경들도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한가한 기분을 만끽했달까.

    담마코리아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려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M에게 잘 다녀오라는 연락이 와서 기분이 더 좋아졌다.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


    ​​<3> 명상을 접하다
    명상 수련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처음 며칠은 눈을 감고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는 법을 익히고, 그 다음은 집중하는 부위를 좁히고, 감각을 느끼는 법을 연습했다. 위빳사나 명상법을 배우는 날에는 몸의 일부에 집중해서 감각을 느끼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조금씩 집중 부위를 바꿔가며 각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오랫동안 앉아있으면 어깨 통증을 심하게 느끼기 때문에 명상시간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집중도 안 되고 잡 생각만 들고, 뭔가 번뜩이는 깨달음이 느껴져야 할 것 같은데, 여러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데 그게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답답했다. 더위와 농가에서 풍겨오는 거름 냄새도 고역스러웠다. 2, 4, 6일에 수련을 포기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됨...

    그나마 매일 저녁 들었던 법문이 명상하면서 느꼈던 의문점을 많이 해소시켜주었고, 생각보다 좋은 이야기가 많았다. 부처에 대해 잘 몰랐던 부분이 많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었고.


    <4> 위빳사나를 배우다
    명상 수련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라 했다. 누군가에게 기도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돈을 쓰는 등 의식을 치루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련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종교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방식에 법칙을 정하고 지키지 않으면 공포로 협박을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니까.

    사람이 살면서 고통을 느끼는 건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전에 웨지우드 찻잔에 집착해서 옥션을 뒤져가며 괴로워하다가 일기장에 집착은 번뇌의 시작이다... 라고 적고 다 포기한 채 새벽 3시에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ㅋㅋㅋ 그렇게 가지고 싶었는데 웃기게도 정확히 3년 뒤, 우연히 백화점 매장에서 발견했다. 다시 생산되어 나온다고 하길래 아주 싱겁게 비싼 값을 치르며 샀고, 역시나 사고나니 좋다는 감정은 순간일 뿐. 금새 시들해지더라는 슬픈 사실.

    좌우간, 부처를 비롯한 선지자들은 사람을 그렇게 괴롭게 하는 집착과 갈망은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한다.좋아하는 감각은 집착하게 되고, 싫어하는 감각은 혐오하게 되며, 순간 떠오는 감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고통을 받는 거라고.

    그래서 이러한 감각들에 집착하지 않게 되면, 자연스레 갈망과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 하였다. 위빳사나 수련은 내 몸의 여러 곳에서 감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결국은 감각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감각의 무상함을 느끼는 훈련법이라 할 수 있겠다.


    <5> 고요함을 느끼는 순간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누군가의 모습과 행동에 너무도 쉽고, 빠르게 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내 모습...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게 아니라 좋고 싫음, 옳고 그릇됨을 판결하는 심판자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위빳사나를 통해서 잠시나마 마음 속에 고요함,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결국은 스스로 답을 찾아내고 헤어진 사람에 대해 완전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그가 나에게 괴로움이 아니며, 나는 그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다만 우리가 함께 할 수 없었을 뿐이란걸 느끼게 되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건, 그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그것으로 나도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은 내게 상처를 주는 감정이 아닌데, 나를 괴롭히던 감정은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어떤 집착들이었음을 깨닫고 나니 큰 슬픔이 몰려와 잠시 눈물을 쏟기도 했다. 조금 더 일찍, 그 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밖에.


    <6> 다시 세상으로
    명상 코스 내내 말을 하지 않다가 끝자락에는 사람들과 대화가 허용된다.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예 말을 하면 안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말을 아끼는 것이기 때문에 하고 싶으면 혼잣말도 하고, 노래도 흥얼거리기도 하고, 지극히 편안한 시간이었다.

    다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지 않다보니 식당에서 옆 사람이 처음 말을 걸었을 때 충격이 크게 오긴 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고, 마음이 울렁울렁 하는 기분. 다른 방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웠으나, 나는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서 마지막까지 방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명상 수련을 하며 집착과 갈망에 대해 생각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갈망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 욕을 터득해야 할 것 같았는데 내가 원하는 건 빨리 여길 나가서 해보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는 거였다. 식당에서 기부를 하고 전시되어있던 책을 읽다보니 싱겁게도 의문이 풀려버렸지만... 나도 참 생각이 짧구나 싶었음.

    고엔까 선생님 왈, 무엇이든 행동하는 것은 타인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면 좋은 것이고, 다만 그 행동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옳으신 말씀.


    <7>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을 세 명이 바라볼 때, 누군가는 그 사람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하고,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결국, 그 사람은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데 내가 그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괴로울 수도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심지어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 그를 싫어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일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내가 그로인해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명상을 다녀온 후 R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가 말했다. 너는 너무 너의 한계를 단정지어놓는 것 같다고. 왜 그 사람을 싫어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렇게 단정지은 순간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에 또다시 머리가 띵 하는 느낌이었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쳐 놓은 울타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을 대 놓고 드러내지 못해 할 수 없다고 애둘러 표현하는 것이었단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8> 내게 찾아온 변화
    명상센터를 다녀온 후로 놀랄만큼 차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아.. 나 지금 화가 났구나.’ 하고 바로 자각하게 되고, 감정에 휩쓸려 거칠어 지지 않게 되었다. 운전하면서 짜증을 격하게 내지 않는 내 모습에 내가 낯설 정도로.

    수련을 지속하지 않으면 금새 예전처럼 쉽게 반응하는 상태로 변하겠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 내 상태를 자각하고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하겠다. 작은 깨달음이라도 알게 된 뒤로는 알기 전과 같을 수 없으니.

    요즘은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마음을 열고 어떤 가능성도 받아들일수 있다면 그만큼 내 세계가 커지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명상센터를 다녀와요! 짱 좋음!!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 차이가 있을테고, 음식에 대한 입맛이 다른 것처럼 나에게 좋은 것이 타인에게도 좋을 수는 없는 거니까. 다만, 내가 R을 보고 스스로 이끌리듯 명상센터를 찾았듯이, 누군가가 나를 보고 ‘아 저사람 참 괜찮은데, 명상을 다녀왔네? 좋은가?’ 하며 호기심에 도전해보는 사람이 있다면 큰 기쁨이 될 것 같다.

    내 안에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아서 이 글을 썼지만, 쓰고보니 또 행복하고 좋다. 모두가 평화롭기를. 아닛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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